제자백가 썸네일형 리스트형 백가쟁명(百家爭鳴) 중국 춘추시대의 제(齊)나라 수도인 임치(臨淄)는 태산 동쪽 약 150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전국시대 굴지의 대도시였다. 이 임치성에는 성문이 13개 있었다고 하는데 그중에서도 서문의 하나인 직문(稷門)은 천하의 학자들이 모여 학문이나 사상에 대하여 연구하고 그 결과를 기탄 없이 토론하는 이른바 백가쟁명(百家爭鳴)의 요람지라고 할수 있었다. 일찍이 위왕(威王)이 즉위하던 해(기원전 357)는 위나라 문후가 죽은 지 30년이 되는 해였다. 당시 위나라는 진(晋)으로 부터 삼가 분할에 의해성립된 신흥 국가이면서도 전국 칠웅 가운데 가장 먼저 강국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위나라가 강하게 된 원인이 훌륭한 인재를 등용한 데 있었음을 안 위왕은 직문 부근에 호화저택을 짓고 인재를 모아들여 학문 토론의 광장으로 ..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