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인재 썸네일형 리스트형 월나라 이재가(理財家) . 범여(范蠡) 범여는 초나라 사람이었지만 월나라의 대부의 자리에 있었다. 그는 와신 상담의 주인공 월나라 구천을 보좌하여 오나라에 복수하도록 하고 패업을 이루게 하였다. 그러나 범여는 구천이 어려움은 같이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을 같이 할 수 없고 결국에는 공신을 살육할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공직을 포기하고 상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재산을 수습하여 이름을 바꾸고 가족과 노비를 이끌고 배를 타고 떠났다. 그는 상업이 발달한 제나라에 도착하여 스스로를 '치이자피' 라고 칭하며 해변가를 경작하고 힘들게 노동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재산이 10만 금에 이르렀다. 제나라 사람들이 그 현명함을 알아보고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범여는 존귀한 명성을 오래 지니는 것은 상서롭지 .. 더보기 사마광(司馬光)과「자치통감(資治通鑑)」 송나라때, 어린아이들이 뜰에서 놀고 있엇다. 한 아이가 커다란 항아리에 올라가 놀다가 그만 미끄러져 항아리 속에빠지고 말았다. 항아리에는 물이 가득 차 있어서 아이는 허우적거렸다. 당황한 아리들은 어쩔줄 모르고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했다. 이때 한 아이가 돌을 들어 항하리 쪽에 던져 항아리를 깨 뜨렸다. 그러자 항아리의 물이 비로소 빠지면서 물에 빠졌던 아이가 살아날수 있었다. 돌로 항아리를 깨뜨린 아이가 바로 사마광(司馬光)이었다. 당시 나이 일곱 살이었는데, 이미「좌씨춘추」를 읽고 그의미를 이해하고 있었으며, 사람 살리는 법도 알고 있었다. 이공경은 '소아격옹도'라 하여 오늘날까지 개봉과 낙양에 그림으로 많이 걸려 있다. 중국인들은 예로부터 역사를 거울,즉'감(鑑)' 으로 묘사하였다. 오늘의 현실을 .. 더보기 중국 고대 최고의 과학자 장형(張衡) 장형(張衡)'78~139년' 은 한나라 하남 남양에서 태어났다. 원래 그의 집안은 지역에서 대단히 유명한 가문이었다. 그의 조부는 광무제로부터 촉군 태수로 임명받아 반란을 진압했다, 이어 흉노를 격퇴한 공으로 어양 태수로 영전하였다. 그의 임기 내에 흉노의 침범은 없었다. 그러나 장형의 부친 대에 이르러 그의집안은 몰락하여 한미한 집안으로 전락하였다. 그리하여 장형은 어려서부터 고학을했고, 16세이후 고향을 떠나 각자로 유력하면서 문학을 비롯하여 각 방면의 지식을 두루 섭렵하였다. 몇년후 그는 최고학부인 태학에 진학하였다. 그는 오경과 육예에 정통하였고, 산학을 비롯하여 천문, 지리와 기계제조 등의 분야에도 조예가 깊었다. 이 무렵 그의 문장은 이미 나라안에 유명해졌고, 특히 부(賦)를 잘 지어 훗날 사.. 더보기 도연명(陶淵明) 도연명(陶淵明)은 동진(東晉) 사람으로 365년경 태어났으며, 집앞에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오류(五柳)선생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는 한미한 집안 출신으로 차별을 받아 높은 벼슬을 하지 못하였다. 뒷날 팽택(彭澤)현 현령으로 있을때 어느 날 우연히 상급기관의 관리인 독우(督郵)를 만났는데, 독우의 부하는 도연명에게 "의관을 갖추어 공슨히 엉접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그는 "겨우 다섯 말(오두미)봉급 때문에 어린아이에게 허리를 굽힐 수는 없다."면서 벼슬을 내놓았다. 현령 자리에 있은 지불과80여일밖에 되지 않았을 때 였다. 그뒤로 그는 두번 다시 관직을 맡지 않았다. 归去来兮, 田园将芜胡不归?既自以心为形役,奚惆怅而独悲?悟已往之不谏,知来者之可追。 (자, 돌아가자 전원이.. 더보기 두보 두보(杜甫)(712~770) 는 자가 자미(子美)이고 하남성 공현(鞏縣) 태생이다. 장안의 두릉과 가까운 소릉에 산 적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소릉야로(少陵野老)'라고 불렀다. 그래서 후에 사람들은 그를 두소릉이라 하였다. 두보의 할아버지 두심언은 유명한 시인 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 부터 시와 관계가 깊은 환경에서 자라났다. 두보는 이미 일곱 살때 '봉황시'를 써서 주위 사람들을 크게 놀라게 하였다. 하지만 그의 집안은 매우 가난하였다. 두보는 스무살에 천하를 유람하면서 많은 걸작을 남겼으나 과거에는 낙제하였다. 그후 낙양에서 이백을 만나고 다시 장안에 돌아왔을때, 그의 나이35세였다. 그 다음해 현종이 널리 인재를 구하는 조서를 내렸다. 그래서 두보는 이시험에 응시하여 좋은 답만을 제출했으나, 웬.. 더보기 이백 이백(李白)의 자는 태백(太白)이고, 파서지방 면주의 청련향에서 자랐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뛰어난 문재를 발휘하였다. 뿐만 아니라 검술을 좋아 하고 의협심이 강한 대장부이기도 아였다. 그는 스물다섯 살때 칼을 차고 천하유랑을 시작하였다. 이유랑은 마흔두 살까지 계속되었다. 그동안에 그는 운몽 자방에서 재상 허어사의 딸과 결혼 했으면, 병주에서는 당시 병졸로서 위기에 빠진 곽자의를 구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도사들과 어울리며 노장 사상에 심취아였다. 그리아여 마흔두살때 도사 오운의 추천으로 장안에서 벼슬을 얻었다. 어느 날 현종은 이백을 궁정에 불러,"평민인 그대를 짐이 알게 된것은 오직 그대의 사람됨과 글 솜씨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수 없을 만큼 탁월하기 때문이오."라며 이백을..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