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문제 썸네일형 리스트형 육진(六鎭)의 난 499년, 북위 개혁의 구심점이었던 제7대 효문제가 병사하자 북위 신질서에 잠재되어 있던 사회적 모순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효문제의 뒤를 이은 제8대 황제 선무제(재위 499~515)는 불교에 심취한 나머지 정사를 외척에 맡겼으며, 제9대 황제 효명제(재위 510~528)는 나이가 어려 모후인 호태후가 섭정했다. 호태후는 효명제 등극에 공을 세워 시중, 거문하성, 영군장군이 된 우출 등 귀족파들을 조정에서 몰아내고, 자신의 섭정에 불만을 품고 연금을 시도했던 유등과 원차를 내보냈다. 호태후는 섭정 동안 북위의 경제를 성장시키긴 했으나, 그녀는 정권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사치스런 생활을 했다. 또한 독실한 불교 신자인 그녀는 전국에 사찰을 건립하여 재정을 악화시켰다. 더불어 문벌귀족들은 서로 부를 경쟁.. 더보기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