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나라 왕 상탕(商湯)의 조상은 제곡(帝嚳)의 아들인 설이다. 설의 어머니는 유융씨의 딸인 간적이었다. 어느날 한 마리 검은 새가 날아와서알을 떨어뜨리고 갔는데, 그녀는 그알을 주워 먹고 설을 잉태하였다. 이렇게 태어난 설은 우의 치수사업에 공을 세웠고 순임금에 의해 교육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또 순임금은 설을 상(商)지방에 봉하고 상이라는 성씨도 내렸다.
상탕은 설의 14데 자손이었다. 자애롭고 인자한 정치를 펼친 상탕으로 인해 은나라는 날이 갈수록 융성해졌다. 당시 중앙의 하(夏)나라는 폭군 걸와(桀王)의 시대였다. 상탕은 여전히 신하 나라로서 하나라를 섬겼다. 그는 현명하기로 이름이 높던 이윤(伊尹)이라는 사람을 초청하여 하나라 걸왕에게 추천해 보냈다. 이윤이 신하로 일한다면 나라가 조금이라도 바로잡힐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주색에 빠져 있던 걸왕은 이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할수 없이 이윤도 돌아와 상탕을 섬기게 되었다.
원래 이윤은 산동 지방에 살면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런데 상탕이 그의 뛰어남을 알고 사람을 보내 나라의 일을 도와 달라고 청하였다. 그 당시 이윤은 걸왕의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정치에 나설 생각이 없다며 숨어 살뜻을 비쳤다. 그 뒤 상탕은 더욱 극진한 예를 갖춰 사람을 보내 청했지만 이윤은 거듭 사양하였다. 이렇게 오가기를 다섯번, 이윤도 상탕이 성실하고 겸손한 인물임을 확인하고 부름에 응했다.
이때 걸왕에게 직언을 한 충신 관용봉이 걸왕의 노여움을 사 처형되었는데, 상탕은 신하를 보내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다. 이소식을 들은 걸왕은 크게 노했다. 그는 상탕을 초대하는 척하며 그를 불렀고 탕이 도착하자마자 그를 하대(夏臺)의 감옥에 가둬 버렸다. 이렇게 상탕의 목숨이 위태로워졌을 때 이윤은 걸왕이 좋아하는 미미녀와 많은 보물을 바쳐 간신히 상탕을 구했다.
어느 날 탕왕이 시찰을 나갔을 때였다. 어떤 사람이 그물을 사방에 쳐놓고 새가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든, 땅에서 솟아나는 것이든 사방에서 날아오는 모든 새는 다 내 그물에 걸려라."
탕왕이 이를 보고는 한쪽 그물만 남기고 나머지 세방향의 그물은 거둬 버리면서(이로부터 망개일면(網開一面)이라는 고사성어가 비롯되었다) 이렇게 말하였다. "왼쪽으로 가려는 새는 왼쪽으로 가라. 그리고 오른쪽으로 가려거든 그쪽으로 가라. 다만 하늘의 뜻을 따르지 않는 새만 그물에 걸려라."
이소문이 나라에 널리 퍼지자 백성들은 "탕왕의 덕이 저렇듯 짐승에게까지 미치니, 하물며 사람에게는 어떻겠느냐."하며 상탕의 인자한덕을 너나 할 것 없이 칭송하였다.
그 후 상탕이 하나라 걸왕을 토벌하자 천하의 제후들은 모두 그를 천자로 추대했다. 상탕이 천자가 되어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자 천하는 다시 태평성대를 맞았다. 그런데 이 무렵 가뭄이 7년 동안이나 계속되었다. 탕왕이 태사(太史)에게 그까닭을 점치게 하니 태사가 이렇게 말하였다. "아무래도 사람을 바쳐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비가 오지 않을 것입니다."
탕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비가 오기를 비는 것은 모두 백성을 위함이다.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희생시킬 수는 없다. 만약 사람을 희생물로 바쳐야 한다면 내가 그 희생자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 탕왕은 목욕을 하고 난 후 손톱을 깎고 머리털을 잘랐다. 그리고 흰 말이 이끄는 장식 없는 흰 수레를 타고서 희 머리띠를 두르고 스스로 희생양이 되있다. 그런 다음 들판에 나가 단을 쌓고 엄숙하게 꿇어 앉아 자기 자신을 꾸짖는 여섯 조항의 말을 하늘에 아뢰었다. "지금 이렇듯 백성들이 고통 받고 있는 것은 능력 없고 덕이 부족한 제가 정치를 하며 절제를 하지 못하고 문란해졌기 때문 입니까? 또한 제가 백성을 다 살피지 못하여 백성들이 직업을 엃고 곤궁해졌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저의 궁전이 너무 화려하기 때문입니까? 또는 궁궐에서 여자 때문에 정치가 어지럽혀졌기 때문입니까? 뇌물이 성하여 도덕이 무너졌기 때문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아부하는 말로 인하여 어진사람이 배척당하기 때문입니까?"
탕왕의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늘에서 갑자기 억수 같은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비는 가뭄으로 허덕였던 세상을 흠뻑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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