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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재

월나라 이재가(理財家) . 범여(范蠡)

 범여는 초나라 사람이었지만 월나라의 대부의 자리에 있었다. 그는 와신 상담의 주인공 월나라 구천을 보좌하여 오나라에 복수하도록 하고 패업을 이루게 하였다. 

 그러나 범여는 구천이 어려움은 같이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을 같이 할 수 없고 결국에는 공신을 살육할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공직을 포기하고 상업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조용히 자신의 재산을 수습하여 이름을 바꾸고 가족과 노비를 이끌고 배를 타고 떠났다. 

 그는 상업이 발달한 제나라에 도착하여 스스로를 '치이자피' 라고 칭하며 해변가를 경작하고 힘들게 노동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재산이 10만 금에 이르렀다. 제나라 사람들이 그 현명함을 알아보고 그를 재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범여는 존귀한 명성을 오래 지니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일이라고 여겨 재상의 인을 반납하고 모아둔 재산을 모두 나눠주고 두 번째로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 

 그는 상업 중심지인 도 라는 곳에 거주하면서 스스로를 주공이라 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도주공이라 불렀다. 범여는 농업과 목축 그리고 상업을 결합하여 또 다시 커다란 재산을 모았다. 

 범여는 진정한 대상인이었다. 그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사업 파트너를 선택해 상대를 충분히 신뢰했으며 어떤 문제가 생겨도 책임을 떠넘기거나 비난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인격적 매력이야말로 그를 도랼이 넓은 위세당당한 대정치가로 만들어주었다. 그가 정계에서 홀연 사라져 홀로 깨끗했을 때에도 여전히 능히 천하를 구제하고 자신이 모은 재산을 다시 한 번 자기와 별로 교류가 없던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인격적 매력 때문이었다. 그는 허명을 분토처럼 여겼고, 오직 숨어서도 자신의 모습이 보일까 걱정하였으니 이러한 그의 도덕 품격은 일반적인 부자들의 차원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을 돕기 좋아하는 행적과 명리에 담백한 그의 풍모, 그리고 관후 인자한 그의 품격은 과연 무엇이 지혜로운 것인지를, 그리고 차원이다른 인생의 비범한 선택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고통은 함께할 수 있으나 기쁨은 함께 나눌 수 없다

 

범여는 그천을 도와 22년 만에 와신상담의 숙적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그 후 구천은 범여에게 상장군이라는 최고 벼슬을 내렸다. 그러나 범여는 벼슬을 사양했다. '이미 목적을 달성한 군주 곁에 오래 있는 것은 위험하다. 구천은 고생은 함께 나눌 수는 있어도 편안함은 함께 나누지 못할 인물이다.'

 이렇게 판단한 범여는 구천에게 편지를 올렸다.

 <군주께서 괴로워하실 때 몸이 부서지도록 일해야 하며 군주께서 모욕을 당하실 때는 생명을 내던져야 하는 것이 신하의 도리입니다. 회계산에서 대왕께서 치욕을 당하시는 것을 보면서 생명을 이어온 것은 오직 오나라에 복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것이 이뤄진 지금, 마땅히 그 죄를 받겠습니다.>

 그 편지를 받고 깜짝 놀란 구천은 사자를 보내 범여에게 말했다.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나는 나라를 둘로 나누어 그대와 둘이서 다스리려 하고 있는데내 말을 듣지 않으면 그대를 죽여서라도 듣게 하겠다."

 그러자 범여는 가벼운 가재도구와 보석을 배에 싣고 떠났다. 구천은 회계산 일대에 표지판을 세우고 그곳을 범여의 땅으로 선포하였다.

 범여는 제나라로 간 후 대부 종에게 편지를 했다.

 <하늘을 나는 새가 없어지면 활을 없애고 토끼가 죽으면 사냔개를 참혹하게 죽인다고 합니다. 구천은 목이 길며 입이 검습니다. 좋지 못한 관상입니다. 이런 사람은 고생은 같이 해도 기쁨은 함께 할 수 없습니다. 대부께서는 왜 물러나지 않으십니까?>

 대부 종이 그 편지를 읽고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어느 날 <대부 종이 반란을 꾀하고 있습니다>는 고발이 들어왔다.

 구천은 대부 종에게 칼을 하사하고 이렇게 말했다.

 "귀공은 과인에게 오나라를 토벌하는 일곱 가지 비결이 있다고 했는데 과인이 그 중 세 가지를 사용하여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이제 나머지 네 가지는 그대가 가지고 있는데 돌아가신 선왕을 모시며 시험해 보는 것이 어떤가?"

 대부 종은 결국 그 칼로 자신의 목숨을 끊어야 했다.

 

 제나라로 간 범여는 스스로를 '치이자피'라고 칭하였다. 그는 해변가에서 자식들과 함께 땀 흘리며 밭을 갈아 재산을 모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큰 부자가 되었다. 그러자 제나라에서 그에게 재상으로 와달라고 간청했다. 범여는 탄식했다.

 "들판에서 천금의 재산을 모으고 관가에서 재상의 벼슬에 올랐으니 그 이상의 명예가 없다. 그러나 명예가 계속되면 도리어 화근으로 된다."

 범여는 제나라의 요청을 사양하고 재산을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음, 값나가는 보석만 지니고 몰래 제나라를 떠나 도 나라로 갔다. 도나라는 천하의 중심이 되므로 교역을 하면 각지와 통하여서 재산을 모을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스스로를 도주공이라 칭하고 아들과 함께 농경과 목축에 힘썼으며, 물가의 변동에 따라 시세 차이가 나는 물건을 취급하면서 1할의 이익만 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수만 금의 거부가 될 수 있었고, 세상 사람들은 도주공을 칭송하였다.

 

진정으로 재물을 아끼는 길은

 

 범여가 도나라에 살고 있을 때 막내아들이 태어났다. 그 막내가 20세가 되었을 때 차남이 초나라에서 살인을 하여 붙잡혔다. 그러자 범여가 말했다.

 "살인을 했으니 죽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천금을 가진 부자의 아들은 길거리에서 죽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막내아들에게 급히 황금 천 일 헝겊 자루에 넣어 마차에 싣도록 하였다. 막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장남이 자기가 가겠다고 나섰다. 범여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자 장남이 불만을 터뜨렸다. 

 "장남은 집안을 살피므로 그를 일러 가독이라 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막내 동생을 보내시는 것은 제가 무능하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죽고 말겠습니다."

 어머니가 깜짝 놀라 범여에게 하소연 했다.

 "막내를 보낸다고 꼭 둘째를 살려온다고는 못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때문에 집안의 장손을 죽게 할 작정이십니까?"

 범여는 하는 수 없이 장남을 보냈다. 그는 자기 친구인 초나라의 장생에게 편지를 쓰는 한편 장남에게 단단히 일렀다.

 "초나라에 가거든 가지고 간 황금을 장생에게 주고 모든 일을 그에게 맡겨라.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말대로 하여라."

 장남은 따로 수백 금을 갖고 초나라로 떠났다. 그런데 장남이 막상 장생의 집에 도착해 보니 그의 집은 변두리에 있었고 대문 앞까지 잡풀이 무성했다. 장남은 아버지의 편지와 가지고 온 황금을 그에게 주었다. 그러자 장생이 말했다.

 "초나라에 머물러 있지 말고 지금 곧장 집으로 돌아가시오. 설사 아우가 풀려나도 어떻게 풀려났는지 그 이유를 묻지 마시오."

 그러나 장남은 초나라에서 계속 머물면서 따로 가져온 황금을 초나라 실력자들에게 뿌리고 다녔다.

 장생은 가난하게 살았으나 청빈함으로 왕을 비롯한 모근 신하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범여에게도 황금을 받을 마음은 추호도 없었으며 일만 마치면 곧 되돌려주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범여의 장남은 '천하의 청렴한 장생도 돈 앞에서는 별 수 없구나.' 하고 생각했다.

 어느 날 장생이 궁에 들어가 왕에게 아뢰었다.

 "별이 움직이는 모양이 좋지않습니다. 우리나라가 어려움을 당할까 두렵습니다."

 왕은 장생을 신뢰했기 때문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겠소?"라고 물었다.

 "대왕께서 덕을 베푸셔야 할 줄로 아옵니다."

 왕은 즉시 금, 은, 동을 모아둔 부고를 봉인하게 했다. 그때 범여의 장남에게 황금을 받은 한 대신이 장남에게 급히 말했다.

 "여보게! 곧 사면이 있을 듯하네."

 "왜 그렇습니까?"

 "사면이 내리기 전에는 반드시 부고가 봉인되도록 되어 있네. 어젯밤 왕께서 부고를 봉인하도록 명령하셨네."

 그러자 장남은 '대사면이 내리면 마땅히 동생이 석방된다. 쓸데없이 그 많은 황금을 장생에게 주었구나.'라고 생각해 곧장 장생에게 달려갔다.

 장생이 깜작 놀랐다.

 "아니, 자네가 왜 지금까지 여기에 있는 것이오?"

 "동생이 사면되어 나오게 되었답니다. 그래서 작별 인사를 드리려고```."

 장생은 황금을 돌려 달라는 그의 마음을 알아 채고는 "금은 안에 그대로 있소. 가져가고 싶으면 가져가시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장남은 재빨리 금을 찾아가지고 떠나버렸다. 새파란 아이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느낀 장생은 즉시 궁에 들어가 왕에게 말했다.

 "엊그제 별이 불길하게 움직인다고 말씀드렸을때, 왕께서는 급히 덕망을 베풀어 대처하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지금 도나라의 부호인 범여의 아들이 사람을 죽이고 초나라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래서 범여가 황금을 뿌리면서 대신들을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 까닭으로 시중에서는 사면이 범여의 아들을 살리려는 것이며 대왕께서 특별히 초나라 백성을 위해 덕망을 베푸시는 것이 아니라는 풍문이 떠돌고 있습니다."

 왕이 노방대발했다.

 "내가 어찌 그자 한 명 대문에 사면을 베푼단 말이오?"

 왕은 당장 범여의 아들을 처형시키고 그 후에야 사면령을 내렸다.

 결국 장남은 동생의 시체를 안고 돌아왔다. 어머니와 모든 마을 사람들이 슬퍼했으나 범여는 혼자서 웃고 있었다.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다. 큰아들이 동생을 위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어려서부터 나와 함께 갖은 고생을 다 해봤기 때문에 좀처럼 돈을 쓸 줄 모른다. 반대로 막내는 태어날 때부터 부유하게 어려움 없이 자랐기 때문에  돈 모으는 고통을 모르고 돈도 잘 쓴다. 내가 막내를 보내려 했던 것은 막내라면 거기 가서 돈을 크게 쓸 수 있을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었다. 큰아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것이 결국 동생을 죽이게 된 원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인 것을 어찌 슬퍼만 하랴! 나는 밤낮으로 둘째 애의 시신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디."

 범여는 19년 동안 천금의 재산을 세 번씩이나 모았으나 그 중 두 번은 가난한 벗들과 일가친척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른바 '부유하여 그 덕을 행하기 좋아하는 사람' 이었다.

 그는 늙어서 자손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면서 관리하게 했는데, 자손들의 재산도 수만금의 이르렀다.

 범여는 세 번이나 옮기고도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그가 멈추는 곳에서는 반드시 이름을 떠쳤다. 범여가 마침내 도 땅에서 늙어 세상을 떠나니, 세상은 그를 '도주공'이라고 칭송했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범여를 극구 칭찬했다.

 "범여는 세 번 자리를 옮기고도 모두 영광스러운 명성을 남겨, 그 이름을 후세에 길이 남기었다. 신하와 군주가 이러하다면 드러내지 않으려 할지라도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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