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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재

이백

    

이백(李白)의 자는 태백(太白)이고, 파서지방 면주의 청련향에서 자랐다. 그는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뛰어난 문재를 발휘하였다. 뿐만 아니라 검술을 좋아 하고 의협심이 강한 대장부이기도 아였다.

     그는 스물다섯 살때 칼을 차고 천하유랑을 시작하였다. 이유랑은 마흔두 살까지 계속되었다. 그동안에 그는 운몽 자방에서 재상 허어사의 딸과 결혼 했으면, 병주에서는 당시 병졸로서 위기에 빠진 곽자의를 구해 주기도 하였다. 그러면서 도사들과 어울리며 노장 사상에 심취아였다. 그리아여 마흔두살때 도사 오운의 추천으로 장안에서 벼슬을 얻었다.

     어느 날 현종은 이백을 궁정에 불러,"평민인 그대를 짐이 알게 된것은 오직 그대의 사람됨과 글 솜씨가 다른 사람들과 비교할수 없을 만큼 탁월하기 때문이오."라며 이백을 크게 후대하면서 대화를 나누고 함께 식사를 나눴다. 황제가 평민에 대하여 이러한 대우를 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후 이백의 명성은 천하에 퍼지게 되었다. 

     이백은 정치에 대한 자신의 뜻을 펼쳐보려 했지만 끝내 이룰 수 없었다. 현종은 이백이 다만 궁정 시인으로 남아 있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이렇다 할일도 없이 시를 짓는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향수를 달래는 나날을 보내야 했다.

     이러한 생활에 염증이 난 이백은 당시 모든 관리들이 두려워하는 환관의 우두머리 고력사 앞에서 보란 듯이 다리를 쭉 뻗고 신을 벗기게 하였으면, 황제에 대해서도 마치 친구를 대하듯이 놀려대기도 하였다.

     어느 날 현종은 양귀비를 데리고 침향정에 나가 모란꽃을 구경하였다. 그때 당시의 명가수 이귀년이 노래를 하려했으나, 현종은 이렇게 말했다."아름다운 꽃과 아름다원 양귀비 앞에서 옛 가사로 노래를 부른 데서야 무슨 운치가 있겠는가?" 현종은 이백을 급히 찾아오도록 하였다.

      이백은 붓을 들더니 금방'청평조의 가사'를 지어 올렸다. 이백이 시를 짓자 이귀년은 그자리에서 곡을 붙여 노래를 불렀다. 현종은 넋을 잃은 채 듣고 있었고, 양귀비도 웃음을 가득 머금고 들었다. 이'청평조의 노래'는 이후 세상에 알려져 즐겨 불려졌다.

      그런데 환관 고력사는 이백을 매우 못마땅하게 여겨 항상 그를 모함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청평조의 가사'를 듣고 양귀비에게 이렇게 일어바쳤다.

      "이백은 이 시에서 당신을 한나라 성제의 총희였던 조비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신을 몹시 비난하는 내용입니다." 양귀비는 고력사의 말을 듣고 는 환전히 심기가 상했다 그에 따라 양귀비에 푹빠져 있는 현종도 당연히 이백을 멀리하게 도었다.

       냉대를 이기지 못하는 성격인 이백은 마침내 장안을 떠나 방량길에 올랐다.

       이백은 벼슬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그는"어찌 허리를 굽히면서 권력에 아부하여 내마음을 펴지 못할소냐!"라고 노래 부르며 경치 좋은 강남으로 내려가 시와 술로 세월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