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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한신(韓信)

천하통일을 이룬 뒤 한고조 유방(漢高祖 劉邦) 은 자주 한신과 여러 장수의 능력에 대하여 평가하곤 하였다.

하루는 고조가 한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 같은 사람이 거느릴수 있는 군사가 어느 정도 된다고 보는가?"

그러자 한신은 "한 10만 정도까지는 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고조가 "그렇다면 그대는 어떤가?" 라고 묻자 한신은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이 이로부터 비롯되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고조는 웃으며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그런데 그러한 그대가 어찌 나에게 사로 잡히게 되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한신이 대답하였다. "폐하께서는 병사들의 장군이 되실 수는 없지만 장군들의 우두머리가 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제가 붙잡힌 것이 바로 그때문입니다. 더욱이 폐하의 권력은 하늘이 준 것이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수 없습니다."

한고조 유방은 기껏해야 10만 명의 병사를 지휘할 만한 능력을 지녔다. 반면 한신은 백만명 이상, 아니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그지휘 능력이 빛나는 명장이었다.

그러나 한신이 지닌 능력은 병사를 지휘하는 능력이었고, 유방이 지닌 능력은 그러한 장군을 지휘하는 능력이었다.

많은 병사들을 다스릴 줄 아는 능력과 장군을 다스리는 능력, 그것이 바로 그릇의 차이이다. 그리고 그것이 인물의 등급을 결정했다.

 

한신은 군사적 작선과 전략에 있어 비할 바 없이 탁월한 상승장군(常勝將軍)이었지만 정치적 식견과 안목은 부족하였다. 그는 천하제패의 웅대한 꿈을 지니지 않았고, 왕이나 제후의 자리에만 만족했다.

그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책사 괴통과 항우의 부하인 무섭은 한신에게 스스로 독립하여 항우, 유방과 함께 천하를 삼분하라고 거듭 건의하였다. 물론 당시 한신에게는 그렇게 할 만한 충분한 힘이 있었다. 하지만 한신은 "한왕은 나에게 커다란 은혜를 베풀었소. 그의밥을 내게 주어 먹도록 하였소. 속담에도' 남의 수레를 얻어 탄 사람은 그의 환난을 나눠야 하며, 남의 옷을 얻어 입은 사람은 그의 근심을 함께 나눠야하고, 남의 음식을 얻어먹은 사람은 그의 사업을 위해 목숨을 바쳐 일해야 한도.' 고 했소. 내가 어찌 사사로운 이익에 사로잡혀 의리를 저버릴수 있다는 말이오?" 라고 말하며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천하가 통일된뒤, 유방은 한신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한신에게 항우의 휘하에 있었던 명장 종리매를 체포하라고 명령하였다. 한신은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종리매를 체포하였다. 그때 종리매는 "한왕 유방이 감히 초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나 종리매가 당신 옆에 있기 때문이오. 만약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나를 잡아갈 생각이라면 오늘 내 스스로 죽겠소. 하지만 당신 역사 곧 망할 것이오." 그러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결국 종리매의 말대로 한신은 곧 망하였다. 한신은 자신의 수족도 잘라내면서 유방에게 굴복하여 목숨을 부지하려 했지만 그는 더욱 작아졌고, 그렇게 작아지다가 결국 하나의 점이 되어 덧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것은 한신의 선량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였지만, 본질적으로 말하면 그가 제왕으로서의 큰 꿈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수 있다. 오히려 이점에서는 "왕후장상의의 씨가 따로 있는가!" 라고 선포했던 진섭보다 못하였다.

유방의 입장에서 보면, 한신은 항우와 천하를 쟁패할 때 그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반드시 필요한 장군이요 인재였다. 실로 한신이 있었기 때문에 유방은 천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천하를 평정한 뒤, 한신이라는 존재는 이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탄으로서 반드시 제거하지 않으면 안되는 대사이었다.

이로부터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 즉 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더구나 한신은 장량이나 소하와 같은 "빛을 감추고 어둠을 기르는"'도광양회(韜光養晦)'의 철학도 갖지 못하였으니, 그의 비극은 차라리 필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