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현종은 새 여자와 만날때보통 그장소를 화청지 연못으로 정했다. 화청의 연못에서 목욕하명을 받은 여자는 그날밤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현종24년에 현종이 사랑하던 무혜비가 죽었다. 그녀를 잃은 현종은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 무렵 현종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소문이 있었다. 바로 아들 수왕의 비(妃)가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이었다. 현종은 소문에 마음이 끌려 시종에게 수왕비를 불러 오도록하였다. 수왕비를 보자 현종은 입이 벌어졌다. 그녀는 미녀일 뿐 아니라 매우 이지적인 여인으로 음악과 무용에도 빼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이 수왕비가 바로 그유명한 양귀비(楊貴妃)였다. 양귀비의 원래 이름은 양대진이며, 처음에 현종의 아들 수왕의 비로 10년 동안 섬겼다. 어쨌든 56세의 시아버지 현종과22세의 며느리 양귀비는 어렇게 운명적인 만남을 가졌다.
첫눈에 양귀비에게 흠뻑 빠진 현종은 우선 양대진 자신의 뜻에 의해 여자 도사(道士)가 된것처럼 꾸며 궁중에 머물러 있게 하고, 아들 수왕은 따로 위소훈의 딸에게 장가들게 했다. 그런 뒤에 다시 양대진을 후궁으로 삼았다가, 마침내 궁중에 들어온지 6년 만에 귀비로 삼았다.
이렇게 하여 미모의 후궁3천명에게 돌아갈 총애가 오직 양귀비 한몸에 쏠리게 되었다. 현종과 양귀비 두사람은 너무나도 서로에게 깊이빠진 나머지 몇날며칠을 서로 떨어질 줄 모르고 사랑을 불태웠다. 현종은 완전히 정치에 홍미를 잃고 오직 양귀비의 품속에서 지내고자했다.
양귀비는 원래 질투심이 강한 여자였다. 얼마나 성격이 독했던지 두번씩이나 폐출되기도 하였다. 폐출된 양귀비는 자기 집으로 돌아와 매일매일 울음으로 지냈다. 한편 현종은 양귀비의 저친 성격이 미워 내쫓긴 했지만 그녀 없이는 아무런 즐거움도 없을 뿐 아니라 하루 세끼 식사조차 입에 댈수 없을 정도였다.
현총의 이 같은 심사를 알아차린 환관 고력사는 현종이 이름으로 양귀비에게 식사를 보내도록 하였다. 현종이 내린 식사를 받은 양귀비는 즉시 칠흑 같은 자신의 머리를 곱게 잘라 묶고 이를 고력사에게 건네며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이제 저는 죽음으로써 제가 지은 죄를 갚으려 합니다. 지금 저의 모든것은 폐하께서 하사하신 것이고, 오직 이 검은 머리만이 부모에게서물려받은 것입니다. 이것을 폐하께 바쳐 오늘 제가 폐하와 영원히 이별하는 마음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고력사가 전한 양귀비의 칠흑 같은 머리를 받아 본 현종은 즉시 양귀비를 궁궐로 불러들였다.
현종39년 칠월칠석날 밤에 현종은 아름다운 화청궁에서 양귀비와 함께 노닐고 있었다. 밤이 깊어 하늘에는 은하수가 촘촘히 박혀 빛나고 있었고. 그런데 갑자기 양귀비가 흐느껴 우는 것이었다. 현종이 몇번이고 달렸으나 양귀비의 흐느낌은 그치지 않았다. 한참 후에야 양귀비는 눈물을 닦으면서 목메이는 소리로 말했다. "하늘에 반짝이는 견우성과 직녀성, 그 얼마나 아름다운 인연입니까? 그와 같은 지극한 사랑과 영원한 애정이 부럽기만 합니다. 나이가 들면 가을 부채처럼 버림받는 여자들의 허무함이 너무 서럽기만 합니다...".
현종은 이말을 듣고 양귀비의 손을 꼭 잡고 하늘의 반짝이는 별앞에서 맹세하였다. "하늘에서는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蓮理枝)가 될지어다."
비익조는 암수가 한몸인 전설적인 새로서 사이좋은 부부를 상징하고, 연리지는 뿌리는 둘이지만 가지는 합쳐하나가 된다는 나무로 부부의 깊은 애정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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