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조는 춘추시대 최초의 패자(覇者)국이었던 제나라를 한 손에 쥐고 흔들었던 환관이다.
제나라 환공은 흔히 강태공으로 알려진 태공망의 14대손이며, 이름은 소백이다.
수조(竪刁)는 본래 어린아이 시절부터 환공 곁에 있으면서 환공의 잔심부름을 하던 시종으로 처음부터 환관의 신분은 아니였다.
당시 궁중의 법도는 남자아이 14살이 넘으면 궁 밖으로 내보내게 되어 있었는데, 환공은 자신의 곁에 있고 싶어 환관이 된 수조가 기특하여 더욱더 총애하게 되었다. 수조가 항상 환공의 곁에 있으면서 환공의 모든 지시는 그의 입을 통해 신하들에게 전달되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수조에게 막강한 권력을 주는 계기가 되고 말았다.
또한 수조는 입맛이 까다로운 환공을 위해 음식을 잘 만드는 사람을 수소문해서 궁궐로 들였는데 그는 역아라는 요리사였다.
역아 역시 수조처럼 환공의 환심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였는데, 특히 환공의 입맛을 만족시키기 위해 자기 아들을 요리의 재료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환관인 수조와는 달리 역아는 환공이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고 있을 때, 환공의 애첩 공희와 은밀한 정사를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환공의 또 다른 애첩인 갈영의 오빠인 개방이란자도 환공의 총애를 받았는데, 환공 말년에는 제나라의 모든 정치를 수조, 역아, 개방 이들 세 사람이 결정하였다.
환공이 이들 세 사람에 의해 올바른 군주의 모습을 잃어가자, 관중과 포숙아는 거듭 이들 세 사람을 물리치라 충언하였으나 환공은 이들 세 사람을 물리치지 않았다.
나중에 관중과 포숙아가 죽고 난 후 환공은 그때야 정신을 차린듯 역아와 개방을 궁궐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그러나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수조의 시중에 익숙해진 환공은 수조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수조만은 쫓아낼 수 없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환공은 역아가 만든 음식의 맛을 잊을 수 없어 쫓아낸 역아마저 궁으로 다시 불러들였다.
다시 만난 수조와 역아는 확실하게 권력을 쥐기 위하여 장위희의 아들인 무궤를 환공의 후계자로 만들 음모를 꾸몄다.
당시 환공에게는 세 명의 정부인, 즉 왕희, 채희, 서희가 있었는데 그들 모두 아들을 낳지 못하였다.
많은 후궁들과 아들들 때문에 태자를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것으로 예상한 환공은 일찌감치 관중과 의논하여 후궁인 정희의 아들인 소를 태자로 정해 놓았다.
환공이 제나라를 통치한 지 43년이 되던 해인 기원전 643년 겨울, 죽음을 예감한 환공은 송나라에 가 있는 소를 불러오라 명하고는 사망하였다. 그의 나이 73세였다.
환공의 말로는 비참하였다.
병이 깊어져 거동이 불편한 환공을, 수조와 역아는 방에 가두어놓고 다른 사람들이 일체 접근 못 하게 하였다. 환공은 음식과 물도 마음대로 먹지 못한 채 비참하게 죽었다. 환공이 서거한 후 제나라에서는 다음 군주의 자리를 놓고 치열한 세력 다툼이 벌어졌는데, 이 때문에 환공의 시체는 장례도 치르지 못한 채, 67일 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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