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성왕(成王) 성은 미(芈)이고,씨(氏)는 웅(熊), 이름은 운(恽)으로 춘추(春秋) 시기 초(楚)나라의 군주(君主)이자 초문왕(楚文王)과 식부인 (息夫人)의 아들이다.
동주 시대에 접어들면서 초나라의 왕은 주나라의 세력이 약해진 기원전 740년 도읍지를 단양에서 영으로 천도하면서 제후가아닌 스스로 왕이라 칭하였는데 그가 바로 웅통(熊通), 즉 초 무왕(武王)이었다. 무왕은 초나라가 강대국이 될 수 있도록 나라의 기반을 확실히 다졌으며 그의 아들 문왕(文王)대에 와서 초나라는 중원을 넘볼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나라가 되었다.
그 후 초나라는 성왕대에 이르러 세력을 더욱 넓혀가면서 패자의 자리를 넘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중원의 제후국들은 초나라를 남방의 오랑캐로 생각하면서 업신여겼다. 그리고 진(秦) 목공, 진(晉) 문공과 양공 등 강력한 힘을 가진 제후들의 견제로 초 성왕의 패자 등극은 어려워지기만 하였다.
성왕은 서자인 직(職)을 총애하여 태자 상신(商臣)을 폐하고 직을 세우려고 했다. 태자의 스승인 반숭(潘崇)이 상신을 충동질하여 반란을 일으키게 했고. 상신은 자기 휘하의 친위대를 이글고 궁궐을 급습하여 아버지 성왕을 감금하였다. 성왕은 아직 자신을 따르는 무리가 반란을 진압하러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일부러 조리 시간이 오래 걸리는 웅번(熊蹯, 곰 발바닥) 요리를 먹고 죽겠다고 하였다. 하지만 성왕의 의도를 눈치챈 상신은 단번에 거절하였다.
초성왕은 태자 상신(商臣)과 반숭(潘崇)의 핍박에 못 이겨 자살하고 말았다. 시호는 성왕(成王)이다.
전해오는 얘기로는 상신이 처음에는 시호를 영왕이라고 하였는데 아버지가 눈을 감지 않기에 다시 시호를 성왕이라 하자 눈을 감았다고 한다. 성왕이 죽은 후 반역한 아들 상신이 다음 왕위를 물려받았는데, 그가 바로 초 목왕(穆王)이다.
아버지 성왕을 자결하게 한 후 왕위에 오른 목왕이었지만, 그는 재위 기간 12년동안 정치를 잘하여 초나라를 성왕 때보다 더욱 강성한 나라로 만들었다.
초 목왕은 기원전 623년에 강나라를 정벌하고 연이어 다음 해에는 육나라를, 그리고 기원전 618년에는 진나라를 정벌하였다. 이로써 초나라는 중원의 세력 다툼에 한발 깊숙히 끼어들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당시 진나라는 강대국이자 제후국인 진나라의 지배를 받아왔던 나라이었다. 진나라를 공격한 것은 바로 진 나라를 공격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진에 대한 정벌은 뒷일이 걱정되는 사안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계속 세력을 확장해나가던 초목왕은 기원전 614년 노환으로 서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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