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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인물

주원장(朱元璋) 서달(徐達) 언젠가 주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일찍이 한나라에 소하, 한신,장자방, 3걸(三杰)이 있었다... 지금나에게도 그런 자들이 있는데, 이선장(李善長)은 나의 소하이고, 서달(徐達)은 나의 한신이며, 유기는 나의 장지방이다." 서달(徐達)은 1332년 안휘성 봉향에서 태어났다. 농민 출신이었지만 병서를 좋아하여 「육도삼략」에 심취하였고, 또 스스로 무예를 익혀 무술에 뛰어났다. 같은 고향 출신인 주원장 보다 네살 적은 그는 어릴 적부터 장성할 때까지 주원장의 친구이자 부하로 살았다. 그는 출정할 때마다 유생을 초청하여 병법에 대하여 논하였다. 서달은 말수가 적고 생각이 깊었다. 한 번 군령을 내리면 바꾸지 않았다. 그리하여 부하들은 서달의 명을 매우 두려워 하였다. 하지만 주원장 앞에서는 항상 공손하고 신중.. 더보기
거지가 된 부호 등통(鄧通) 중국 역대 거부들의 대부분은 조정 중신이었거나 황제의 친적, 혹은 황제를 지근거리에서 모셨던 환관 출신의 이른바 '관상(官商)'이었다. 이들은 권력과 재산 그리고 명예를 모두 가진 상인이요 부호였다. 이들 '관상'은 황제1인에게 끝없이 아부하고 조정 백관과 백성들위에 군림하면서 한때 거대한 재산을 축적했엇다. 하지만 그 종말은 항상 비극으로 끝났다. 등통(鄧通)은 서한 시대 문제(文帝)때 총신으로서 딸만셋 있는 집안이 막내아들로 태어나 황제의 사랑을 받았다. 등통은 어릴 적부터 학문에는 재주가 없었지만,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데에는 흥미가 많았다. 재산이 많던 부친은 그에게 관리가 될 기회를 주기 위하여 그를 장안으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 장안에서 등통은 황실의 선박을 관리하는 황두랑(黃頭郞)의 벼슬을 .. 더보기
천하 제1색 양귀비(楊貴妃)의 사랑 당 현종은 새 여자와 만날때보통 그장소를 화청지 연못으로 정했다. 화청의 연못에서 목욕하명을 받은 여자는 그날밤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 현종24년에 현종이 사랑하던 무혜비가 죽었다. 그녀를 잃은 현종은 실의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 무렵 현종의 귀를 솔깃하게 하는 소문이 있었다. 바로 아들 수왕의 비(妃)가 절세미인이라는 소문이었다. 현종은 소문에 마음이 끌려 시종에게 수왕비를 불러 오도록하였다. 수왕비를 보자 현종은 입이 벌어졌다. 그녀는 미녀일 뿐 아니라 매우 이지적인 여인으로 음악과 무용에도 빼어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이 수왕비가 바로 그유명한 양귀비(楊貴妃)였다. 양귀비의 원래 이름은 양대진이며, 처음에 현종의 아들 수왕의 비로 10년 동안 섬겼다. 어쨌든 56세의 시아버지 현종과22세의 .. 더보기
송나라를 세운 참모 '조보'趙普 송 태조 조광윤을 도와 그로 하여금 어지럽던 세상을 통일시키고 천하를 호령하는 황제로 만든 사람은 바로 조보라는 인물이다. 태조 조광윤은 신중하고 항상 반성하는 태도를 지닌 인물이었던 반면 결단력이 약했는데, 이를 보완해 준 인물이 바로 조보였다. 후주 시대에 남당을 공격할 때 조광윤의 아버지 조굉은은 아들과 함께 출정했다가 과로로 사망하였다. 이때 조정에서 파견되어 조굉은을 지극하게 간호했던 사람이 조보였고,이를 계기로 하여 조광윤과 조보의 관계가 맺어졌다. 조광윤은 처음 조보를 보고 `이 사람은 기 이다!`라고 생각하여 항상 자기 옆에 있도록 하였다. 조보는 조광윤를 황제로 만든 공신 중의 공신으로서 조광윤을 도와 천하통일을 이루게 한 중추적 인물이였다. 태조 조광윤은 즉위한 이래 자주 신하들의 집을.. 더보기
한신(韓信) 천하통일을 이룬 뒤 한고조 유방(漢高祖 劉邦) 은 자주 한신과 여러 장수의 능력에 대하여 평가하곤 하였다. 하루는 고조가 한신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 같은 사람이 거느릴수 있는 군사가 어느 정도 된다고 보는가?" 그러자 한신은 "한 10만 정도까지는 되겠습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고조가 "그렇다면 그대는 어떤가?" 라고 묻자 한신은 "저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이 이로부터 비롯되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고조는 웃으며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그런데 그러한 그대가 어찌 나에게 사로 잡히게 되었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한신이 대답하였다. "폐하께서는 병사들의 장군이 되실 수는 없지만 장군들의 우두머리가 되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제가 붙잡힌 것이 바로 그때문입니다. 더.. 더보기
한 고조 유방(漢高祖 劉邦) 한 고조 유방은 항우와 벌인 수십차례의 전투에서 연전연패하다가 마지막 단 한번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둬 천하를 손에 넣었다. 유방이 천하 무적 항우에게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한 고조 유방이 천하를 통일 한 뒤, 연회를 베풀었다. 고조가 말했다. "여러 제후와 장군들은 나를 속일 생각을 말고 모두 속마음을 이야기 해보시오. 과연 짐이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며 항씨가 천하를 잃은 것은 과연 무슨 이유 때문이었겠는가?" 이에 고기(高起)와 왕릉(王陵)이라는 신하가 대답하였다. "폐하께서는 오만하여 다른 사람을 모욕하고 항우는 인자하여 다른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폐하께서는 사람을 파견하여 성을 공략하고 땅을 점령하게 하고 그곳을 그에게 봉하고 능히 천하 사람들과 이익을.. 더보기
기묘한 계책과 용병술 강태공 태공망太公望 여상呂尙은 동해의 한 마을에서 태어났다.그의 선조는 일찍이 사악의 관리가 되어 우임금의 치수 사업을도와 크게 공을 세웠다. 그들은 우와하 시대에 여또는 신 땅에 봉해졌으며 성은 강씨였다.하나라와 은나라 시대에는 그방계의 자손이 신과 여 땅에 봉해지기도 하였고, 또 평민이 되기도 하였는데 상이 그 후예다. 본래의 성은 강씨였지만 그 봉지를 성으로 삼아 여상 이라고 부렀다. 여상은 학문을 좋아해서 집안일을 돌보지 않고 학문에만 열중했다. 그래서 원래 가낭한 집이었지만,나중에는 더욱 가난해져 끼니조차 이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러자 그의 아내조차도 견디지 못하고 몰래 도망쳐 버렸다.그래도 그느 학문에만 매달렸다. 이 무렵 주 문왕이었던 서백창은 나라를 더욱 발전시키려면 인재가 무엇보다도 중요.. 더보기
맹자 (孟子) 맹자의 이름은 가(軻)이며 자는 자여(子與)이다. 기원전 372년 무렵노(魯)나라에서 태어났으며 그 후 추(鄒)나라로 이사 와서 추나라 사람이 되었다. 맹자가 살았던 백가쟁명 시대에 맹자는 공자의 정치사상과 교육 사상 등을 계승하는 동시에 다른 측면을 더욱 발전시켜 자신의 정치 학술사상을 형성했다. 맹자는 당시 묵가, 도가, 법가 등 학파와의 격렬한 논쟁과 경쟁 속에서 유학학파의 이론을 옹호하였고 아울러 유학에서의 자신의 자위를 확립하면서 공자에 버금가는 정통 대유(大儒)가 되었다. 맹자는 공자의 덕치사상을 계승, 발전시켜 인정학설(仁政學說)을 정립했다. 그리고 도덕수양이말로 정치를 잘하는 근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천하의 근본(本)은 국가에 있고, 국가의 근보은 가족에 있으며, 가족의 근본은 나자.. 더보기